태극권의 ‘강유합일’ 정신이 우리 삶에도 스며들기를


이찬 대한태극권협회 창립자

2020. 12. 14 by 정리=최윤호 기자

일요일, 첫 눈이 내렸다. 2020년 서울의 첫 눈. 온통 시끄러운 이 세상을 잠시 조용히 하얗게 뒤덮었다. 이날 코로나19 확진자는 1030명으로 1000명을 넘어섰다. 대통령이 뭐라고 사과를 하고, 3단계 운운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당분간 태극권도관을 비롯한 각종 운동시설들, 공부시설들 문 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온통 우울한 소식 뿐이다. 함께 태극권 수련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일이다. 1년 가까이 코로나 소식으로 날을 지샜는데도, 특별한 대책은 하나도 마련되지 않았고, 오직 개인들이 스스로 마스크 쓰고, 문 닫고, 집에 박혀 있고, 격리해야 한다. 세상이 그저 강하게 내리 누르는 힘만 있고, 부드러움은 사라져 버렸다. 코로나19 상황도 그렇고, 정치판도 그렇고, 각박해진 사람들 사이도 그렇다. 안타깝기 그지 없는 현실이다.

서울에 내린 첫 눈으로 온세상이 하얗게 덮였다. 부드러운 눈송이가 세상을 뒤덮듯, 강함만이 가득한 세상은 부드러움의 옷을 입을 줄 알아야 한다.
서울에 내린 첫 눈으로 온세상이 하얗게 덮였다. 부드러운 눈송이가 세상을 뒤덮듯, 강함만이 가득한 세상은 부드러움의 옷을 입을 줄 알아야 한다.


편강편유, 강함이나 부드러움 하나에 치우침

태극권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는 철학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따로 구별되어 있다면, 그 또한 정상은 아니다. 태극이 음과 양의 뒤섞임에서 빛을 발하듯, 태극권은 부드러움과 강함이 어우러짐에서 그 참된 가치를 발할 수 있다. 이 강퍅해진 세상이 안타까워, 태극권의 강함과 부드러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태극권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 하급 중급 상급이다. 다양한 방면에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강함과 부드러움의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하급 = 편강편유(偏剛偏柔). 강함이나 부드러움에 치우침

중급 = 강유상제(剛柔相濟).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도움

상급 = 강유합일(剛柔合一). 강함과 부드러움이 하나가 됨

지금 세상을 보면 편강편유의 수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많은 수련자들도 처음엔 그렇다. 강함이나 부드러움에 치우친다. 자신의 힘만 믿고 몰아붙이거나, 유약하게 물러앉아 자신의 만족에만 머무르는 사람들이 바로 태극권의 최하급이라 할 수 있는 편강편유에 속한다. 신문방송을 통해 만나는 세상은, 강함이 넘쳐 겸손과 예의를 잊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실제로 주변에서 만나는 세상에는 힘든 처지에 몰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하는 약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먹과 흰 종이가 어우러지는 수묵화처럼, 음과 양이 뒤섞여드는 태극처럼, 강함과 부드러움, 빠름과 조용함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태극궘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먹과 흰 종이가 어우러지는 수묵화처럼, 음과 양이 뒤섞여드는 태극처럼, 강함과 부드러움, 빠름과 조용함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태극궘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강유상제, 강유합일의 경지로 나아가려면

자신이 강함만을 추구하거나, 자신의 몸이 뻣뻣하다면 이제 부드러움을 익혀야 한다. 자신이 유약하기 짝이 없고 그저 뒤로 물러서 만족감을 얻고  있다면, 그것을 보완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고, 정신의 조화를 위해서도 그렇다.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있다보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되기 십상이다.

강유상제, 즉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돕는 것은 중요하다. 남성의 몸 안에 여성성이 숨겨져 있고, 여성의 몸 안에 남성성이 숨겨져 있는 자연의 오묘함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하나의 몸 안에 갖추고 필요할 때 서로 도우라는 자연의 명령이다. 그것을 우리는 1000년의 신비를 담고 있는 태극권의 원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태극권을 수련함으로써 강과 유가 서로 도와 필요에 의해 힘을 쓰고, 필요에 의해 부드러움으로 보완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제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강유합일이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음과 양이 어우러져 태극이 되어 세상 만물의 모태가 되듯, 강과 유가 우리 몸 속에서 어우러지면 공수의 운용이 자유자재가 된다. 이는 양가 태극권에서 말하는 ‘뜻을 쓰고 힘을 쓰지 않는다’ ‘솜으로 싸맨 쇠몽둥이 같다’는 상태를 이룬 것으로서 곧 종심소욕(從心所欲)의 경지를 말한다. 마음에 하고 싶은 바를 그대로 쫓아 할 수 있게 되는 경지이다.

진정한 건강을 위한다면, 강유합일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실현해 내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겸손하게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자세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 세상이 좀더 나아지려면, 강유합일의 정신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태극권은 그 지혜를 수련하는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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