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권은 초지일관의 운동, 느긋하게 한 우물을 파자
초지일관(初志一貫)
살면서 아주 많이 듣는 말이다. 젊은 후학들에게 인생의 교훈을 전달하고자 할 때, 뭔가 거창한 시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훈계를 할 때,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흔히들 하는 말이다. 초지일관하라. 처음의 뜻을 끝까지 유지해라, 이왕 시작한 일, 끝까지 초심을 잃지말고 버텨내라.
새해를 맞이하거나 새로운 직장을 구했을 때는 자신에게 다짐한다. 지금 이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만들어 내리라. 작심삼일이 아니라, 지금의 작심을 평생 기억하고 실천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게 초지일관이다.
태극권은 유장한 호흡으로 평생 수련할 수 있는 운동이다. 초지일관의 자세로 한 우물을 파야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인생과 닮아있다./ 이찬태극권도관 제공
느릿느릿 평생하는 운동, 태극권
태극권은 초지일관의 운동이다. 흔히 알고 있듯, 느릿느릿 천천히 여유있게 움직이면서 수련하는 이 운동은 항상 같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번의 수련을 할 때 처음 시작한 동작의 속도를 끝까지 유지하고, 하나의 정신으로 태극권을 수련해가야 한다. 평생을 같은 마음으로 수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무술들을 수련했다. 태권도는 물론이고 소림권을 비롯해 거의 모든 무술들을 수련했고, 그 결과 칠십여 가지의 투로를 익히게 됐다. 이름도 다 못 외는 수많은 무술들. 뒤늦게 태극권을 접하고, 태극권에 몰입하면서, 그 동안 해온 것들이 어리석었음을 알게 됐다.
이것저것 많이 안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무술의 가짓수, 같은 무술 안에서도 특기로 다룰 수 있는 무기의 종류가 많다고 해서 강한 것도 아니다. 한가지 깊이 있게 수련해야 하고, 몇가지 잘 다룰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족하다. 특히나 태극권은 그렇다. 90의 나이에도 중국 황산을 오르고, 수련과 가르침을 유지하고 있는 대만의 서억중 선생은 산 표본 같은 분이다. 내 스승이며, 세계 태극권의 큰 어른인 이 분은 평생 한 가지 초식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기본투로 하나에 집중했다. 그리고 일가를 이뤘다. 그게 태극권의 세계다.
치료와 건강 위해서도 초치일관 필요
암에 걸려 치료를 시작하면, 주변의 다양한 조언들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런 치료, 저런 음식, 안타까운 마음으로 좋은 정보들을 가져다 준다. 환자 자신도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서 수많은 정보에 솔깃하기 십상.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거기에 맞는 치료방법, 자신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식이요법을 찾아 일정한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는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리 저리 기웃거리다보면, 치료의 길만 더 멀어질 뿐이다.
한 우물을 파라. 초지일관을 일상적 표현으로 바꾸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꼭 질병의 치료가 아니더라도 성공적 인생을 산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비록 좋은 것을 찾을 때까지 여기저기에 많은 우물을 뚫어볼 수는 있겠지만, 일단 이거다 싶은 지점에 이른다면, 그때부터는 한 우물을 파야한다. 그래야 시원한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운동하러 와서는 이것저것 찔러보듯 찔끔찔끔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좋은 성과를 얻기 어렵다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초기엔 이런저런 것들을 맛보되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집중해야 한다.
꾸준히 한 우물을 파면, 그것이 어느 분야이든, 결실을 맛볼 수 있다. 초지일관, 잊지 말아야할 선인들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