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배태극권대회출전기—오승목

2006년 11월 4일

11월 2일 새벽 5시쯤, 나는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 짐을 챙겨 집 앞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타이페이-. 정자태극권의 본거지인 그 곳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지만 내 마음은 설레임으로 가득 찼다.

타이페이에 도착하니 정오쯤 되었다, 나는 대만의 중국음식은 어떨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오찬은 미처 생각지 못한 중요한 자리였다. 현재 정자태극권의 장문인이신 서억중 노사님께서 이찬 선생님과 우리를 환영하는 뜻으로 초대하셨다는 것이었다.

식당에 가니 서 선생님께서도 師姑母님들과 함께 도착하셨다. 우리 일행은 서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악수도 하였는데, 편안하게 배려해 주시는 모습에 아주 자비로운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또 움직이시는 모습을 보니 여든이 넘은 연세라고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20대 초반인 나보다도 더 활력이 넘치셨다.

대만의 음식은 아주 맛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중국음식인데, 몇 일간 그것을 실컷 먹을 생각을 하니 아주 흐뭇하였다. 나는 서 선생님으로부터 가까운 자리에 앉았었는데 우리 일행에게 음식을 권하실 뿐만 아니라 손수 음식을 담아주기도 하셨다.

식사를 마치고는 서 선생님 댁을 방문해 차를 마셨다. 그 차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기를 보충해주는 아주 귀한 것이었다. 나는 노사께서 태극권 수련뿐만 아니라 생활의 전반에도 양생이 스며있음을 느꼈다. 서 선생님께 선물도 받고 기념촬영을 하기위해 자리를 정리할 때, 서 선생님께서 꽤 무거워 보이는 의자에 살짝 손 뿌림만 했음에도 멀리 밀려나가 무척 놀랐다.

우리 일행은 서 선생님 댁에서 나와 사고모님의 안내로 정만청 종사님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1층 전시관에 들어서니 사진을 비롯해 정만청 종사님께서 생전에 직접 사용하셨던, 검 등 병기와 책, 도복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2층에서는 정만청 종사님의 그림들도 볼 수 있었다.

DVD와 책, T셔츠 등 몇 가지 기념품을 산 후, 중국 전통 옷인 당저우 가게에 들려 쇼핑을 하고 숙소인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때가 되었다. 이번에는 진정의(탄칭니) 선생님과 만찬약속이 되어 있었다. 타이페이 시내에 있는 그 식당도 아주 맛있는 곳이었다. 진 선생님을 책에서 사진만 봤을 때는 대단히 엄중하고 무서운 분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뵈니까 아주 유쾌할 뿐 아니라 열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분이셨다. 식사를 한 후 숙소로 돌아오니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대만에 온 첫날부터 그렇게 아주 부단한 하루를 보냈다.

11월3일,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관광을 시작하였다. 이찬 선생님께서 대만의 지리에 워낙 익숙하시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비록 며칠 안 되는 일정이었지만 알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제일 처음 간 곳은 세계 4대 박물관에 속하는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이었다. 옛날 국민당과 공산당이 중국에서 세력 다툼을 하던 때, 중국의 전통적 문화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공산당의 모택동 주석과 달리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은 그것을 소중히 여겨 중국의 중요한 문화유산들을 대만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저 세계적인 박물관도 중국의 문화유산도 없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곳의 보물들을 보니 정말 진귀한 것들이 많았다. 꽤 두꺼운 돋보기로 보아야 그 모양을 볼 수 있는 손톱만한 상아에 새긴 조각품, 다채로운 빛깔의 자기들, 청동기 시대의 유물 등, 석기 시대부터 청나라 때까지의 보물들을 총망라 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정만청 종사님의 서예 작품도 이곳 박물관의 서예전시실에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시간이 부족해 서예전시실에는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태극권, 의술, 시, 서, 화 등 5가지 기예에 최고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정만청 종사님의 서예 작품이 이런 세계적인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야류시장(해변)으로 향했다. 야류시장에 입장하기 전에 먼저 부근 횟집에서 점심으로 롱샤(엄청 큰 새우)를 비롯한 각종 해물요리를 맛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해변으로 들어가니 이곳은 일반적인 해변이 아니라 상상속에서나 본 듯한 온갖 기이한 모양의 바위로 이루어진 아름답고도 신기한 곳이었다. 바위는 모양뿐만 아니라 색깔마저도 특이했다. 올 여름에는 바닷가에 가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특별한 바다에 오게 되어 그간 품었던 바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채울 수 있어 기뻤다.

돌아오는 길에 무술용품점에 들려 철선과 신발 등을 사고, 호텔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니 벌써 저녁때가 되었다. 휴~정말 빠듯한 스케줄이었다. 이날 저녁식사도 한국과 일본, 중국음식의 퓨전 요리를 하는 식당에서 진정의 선생님과 함께 했다.

식사를 마치고 타이페이의 야시장을 구경했는데 갖가지 생활용품은 물론,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중국 무협영화에서 보았던 방울토마토로 꼬치를 만들고 거기에 꿀을 바른 빨간 과일꼬치였는데, 참 맛있었다. 늘 영화에서만 보았던 것을 실제로 먹어보니 흥미로웠다. 또 진 선생님의 권유로 목에 좋다는 살구차도 샀는데 실제로 얼마 전 집에 놀러온 친구가 목이 붓고 목소리가 거칠어져서 한 잔 듬뿍 주었더니 금방 호전되었다.

 

11월 4일, 드디어 월드컵태극권대회가 열리는 날이 왔다. 단체전은 4일에 하고, 개인전은 5일에 하게 되었다. 4일 단체전에 대해서는 박정훈님이 쓴 참가기가 있기에 다시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몇 가지 내가 인상 깊게 본 것만을 쓰려한다.

오전에 개막식 후, 국홍빈 선생님과 이찬 선생님, 그리고 첨덕승 대회장 등 태극권 고수 선생님들의 멋진 시범이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 본격적으로 시합이 진행되어 어느 덧 우리팀 출전시간도 왔다. 우리 팀은 13식과 정자태극권 37식 두 종목의 단체전에 출전하였는데, 먼저 37식에 출전하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순서가 되어 정자태극권을 평소에 하던 대로 펼쳐보였다. 중간에 박정훈님이 정말 재밌는 실수를 하긴 했지만(혼자서 사단편을 한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을 최선을 다해 펼쳐 첫 관문을 열며 본격적으로 대회에 빠져들게 되자 아주 짜릿한 기분이 느껴졌다. 박정훈님은 혼자서 빗나간 단편을 취한 순간, 아마 아찔했을 것이다. 시합이 끝나고 내가 농담 삼아 “아! 정말 짜릿하네요. 드디어 한 가지는 끝났어요. (아저씨는)아찔했죠? ㅎㅎ” 하고 얘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박정훈님 참가기에 있으므로 생략-

13식 시합도 곧이어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시합코트로 이동했다. 나는 어찌됐든 이 13식만이라도 정말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팀원들과 함께 13식을 시작하였다. 이미 37식을 한번 하고 난 뒤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모든 것이 보다 더욱 고요해졌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오늘 이것만은 잘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그 생각마저도 사라질 정도로 마음도 깊이 고요해졌다.

그렇게 강물 흐르듯 13식을 펼쳐나가 어느 덧 후반부에 들어섰다. ‘제’ 동작에 이어 ‘안’을 할 때, 문득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는데, 나는 내가 잘해서 그러는 것 인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찬 선생님께서 나를 큰소리로 부르시는게 아닌가? 고개를 돌려본 나는 아찔했다—-. 그 부분의 13식에서는 ‘제’를 한 뒤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야 하는데, 나 혼자 몸을 돌리지 않고 ‘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 옆에 있던 박정훈님이 몇 번이나 불렀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로 그것을 듣지 못했다. 불과 몇 분전에 박정훈님에게 농담을 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내가 이런 아찔한 실수를 하게 되다니… 대회 준비로 인해 많이 애쓰신 이찬 선생님과 최환 회장님, 팀원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너무나 미안했는데 오히려 팀원분들이 나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다.

 

시합 후에는 대회 주최측에서 마련한 만찬에 이찬 선생님을 초대했는데, 최환 회장님과 우리 팀원들도 동행해 정말 맛있는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밤 11시 반쯤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시합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대회 첫 날이어서 그런지 잠도 오지 않아 이찬 선생님과 한 방에 모여 약간의 술과 함께 오늘 대회에 대해 새벽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11월 5일, 드디어 개인전이 열리는 날이다. 나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아마도 개인전에 더 많은 의미를 두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니 말이다. 대진표를 보니 우리팀에서는 내가 제일 나중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전체에서도 뒤쪽에 속했다. 대만에 온 뒤 연습이 부족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회장 곳곳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나도 적당한 곳을 찾아 연습했다. 개인전은 한 코트에 선수 3명이 함께 실력을 선보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태극권을 시작하였다. 방금 전까지 평소실력을 발휘할 만큼은 충분히 연습했기에 어제보다는 훨씬 원활하게 공가(功架)를 펼칠 수 있었다. 차츰차츰 마음이 고요해지며 포호귀산, 사단편, 주저간추, 그리고 도련후까지 했을때, 잡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사비세에 이어 운수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에 나는 동작이 정말 막힘없이 물 흐르듯 원활함을 느꼈다.

 

그렇게 운수를 몇 번 반복하다가 이제 단편하세를 할 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 느낌을 믿지 못하고 과연 내가 운수를 5번을 모두 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운수 5번이 마치 한 동작처럼 지나가 몇 번을 했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한 번 부족한 것 보다야 한 번 더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단편하세를 하려다 결국 운수를 우운수, 좌운수 이렇게 두 동작을 더했다. 권가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운수를 5번할 것을 7번을 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 잘 해나가고 있었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미처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실수였다. 스스로도 황당했다. 하지만 내가 안일한 마음으로 그리한 것도 아니고 그 순간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 그리고 곧이어 병장기 시합장으로가 태극선을 출전하고 나니 어느 덧 대회는 막바지에 들고, 곧이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비록 나는 실력이 부족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시상결과를 보니 우리팀은 눈부신 성과를 얻어 아주 기뻤다. 우리팀은 13식 단체전은 국외조 1위, 개인전 태극권가는 강금강 전무님이 1위, 안찬호 조교님이 2위, 나는 6위를 했다. 시합의 기본적인 기준도 지키지 못했는데 6위라도 했으니 다행이었다. 13식은 나의 실수로 팀원들에게 굉장히 미안했는데, 1위를 해 놀랍기도 하고 기뻤다. 아마도 13식이 필수 종목으로 채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팀들의 준비가 좀 미진했던 것 같다. 운이 좋았다. 그리고 개인전 병장기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강금강 전무님 태극검 2위, 김태우 사무국장님이 태극선 3위, 나는 태극선 5위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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