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 대한태극권협회 창립자
2015. 03. 19 홍헌표 기자
50대 초반의 여성이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긴다. 반경 2m공간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앞뒤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작이 물 흐르듯 매끄럽다. 태극권의 투로(태권도의 품세에 해당) 동작에서 무술인(武術人)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사실 그녀는 피아니스트다.
태극권과 피아노.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한 부회장의 말을 빌리면 둘은 상통한다.
“태극권의 동작은 브람스의 후기 작품인 ‘인터메조 Op.118’을 떠오르게 합니다. 브람스는 초기부터 화려한 대곡을 썼지만 후반에는 기교에서 자유로워지고 부드러우면서도 단순한 곡이 많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브람스 특유의 고전적인 형식이나 절제미가 있습니다.”
힘을 빼야 최상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점도 피아노 연주와 태극권이 닮은 점이다.
한 부회장은 공인 4단이다. 건강·취미로 태극권하는 사람 중에는 국내에서 고수(高手)로 통한다. 지금 다니는 도관(道館)의 여성 중에서 단수가 가장 높다. 4단부터는 따로 도관을 운영할 수 있다. 그녀는 요즘 무기를 들고 하는 동작 중 가장 어렵다는 태극창을 배우고있다.
춤 동작처럼 아름다운 태극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녀 역시 건강을 위해 태극권을 시작했다.
“2005년 미국에서 생활할 때 동네 스포츠센터 앞 잔디밭에서 춤을 추듯 운동하는 할머니를 봤어요. 뭔지 모를 아우라가 느껴졌는데, 그게 태극권 동작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요.”
요가를 하고 있던 한 부회장은 2006년 3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이찬 세계태극권연맹 부총재가 운영하는 도관에 등록했다.
“춤 동작처럼 아름답게 느껴져서 한 동작 한 동작 배우는 재미가 컸어요. 그렇게 태극권에 빠져드는 동안 어느새 몸이 건강해지더군요.”
몸의 무게중심을 왼발·오른발로 옮기며 허리를 돌리는, 어찌보면 단순하게 보이는 태극권 동작을 반복하다보니 특히 하체가 강해졌다. 목, 허리, 어깨, 팔, 손목, 손가락 등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피아니스트는 상체가 경직되고 하체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 부회장은 태극권을 하면서 긴장된 상체 근육은 풀어주고 약해진 하체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 한 부회장은 등산은 즐기지 않지만 3시간 정도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다. 태극권 덕분에 갱년기 여성에게 찾아오는 안면홍조, 불면증 등의 증상도 거의 겪지 않았다.
태극권의 장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 부회장은 요즘도 일주일에 3~4일 도관에 가서 매번 3시간 이상 운동한다. 맨 먼저 ‘건신12단금(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12가지 체조)’으로 몸을 푸는데, 우리나라의 국민체조 같은 것이다. “태극권의 건강 효과를 최대로 얻으려면 호흡을 잘해야 한다. 동작을 천천히 하면 호흡도 느려지고, 신체에 힘을 빼면 기혈 순환이 잘 이뤄진다. 그 덕분에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몸이 건강해진다”고 했다. 한 부회장은 2년마다 대만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에 네 번이나 출전했다. 그중 한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물론 대만을 뺀 나머지 나라의 출전자끼리 겨룬 경기에서였다.
한 부회장은 ‘테라피 타이치 보급회’ 회장이다.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도록 태극권의 장점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만든 모임이다. 국내에는 일본만큼 태극권 전문 도장이 많지 않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현대백화점 신촌점 문화센터에 태극권 강좌가 개설돼 있고, 서울의 일부 구청에서 강좌가 있다. 2012년 네이버에 ‘태극권, 치유하다(cafe.naver.com/therapytaichi)’라는 카페를 개설한 한 부회장은 지난해 ‘태극권한마당’이라는 동호회 행사 개최를 주도했다.
그녀는 “태극권의 건강 효과를 더욱 널리 보급하기 위해 태극권한마당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부회장은 태극권은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최고의 건강법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태극권이란?
태극권은 중국 전통무술의 하나다. 중국어로는 타이지췐, 영어로는 타이치로 불린다. 송나라 때 도사들이 창안한 무예로,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양생(養生) 수련법이다. 유장하게 움직이는 상체와 탄탄하게 몸을 지탱하는 하체의 조화, 깊고 안정된 호흡이 어우러져 건강한 몸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