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6일
10월 5일 오전 9시 반 비행기를 타고 장개석공항에 도착하니 왁자지껄한 대만사람들의 목소리와 습도 높은 꿉꿉한 공기냄새가 대만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드디어 대회 첫날,
세계 20여개국에서 모인 2만명 가까운 선수와 관중이 가득 들어찬 타오유엔(桃園) 쥐딴(巨蛋) 체육관에 도착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면서 벅차왔다.
체육관 정면에 걸려있는 ‘2012년 제4회 월드컵 세계챔피언 태극권대회’이라고 적혀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월드컵, 태극권 올림픽이구나!!! 내가 정말로 태극권 월드컵에 참가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국의 선수들이 푯말을 따라 입장하고(우리나라는 총 9명이 선수로 출전 했다) 개회선언에 이어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었다.
첫날의 장관은 1000명의 대만 사람들이 ‘정자태극권 37식’을 단체시연한 것이었다. 물결을 이루며 한 호흡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하나의 방향을 향해 뜻과 힘을 모아주는 대만 사람들의 대단한 저력이 느껴졌다.
첫날 단체전에 한국팀은 37식, 태극선, 테라피타이치 종목으로 참가했으나 아쉽게도 입선은 하지 못했다.
둘째 날은 개인전이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날이었다. 왜 그렇게 떨리던지… 하필이면 나의 순서는 8시에 시작하는 개인전 1번이란다… 오 마이 갓!
1번으로 출전하여 심사위원 앞에서 37식을 하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정신을 차려야지.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한 동작 한 동작 집중을 하려고 애를 썼다. 6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고, 점수가 불려 지는데 아쉬움이 몰려왔다. 좀 더 잘할 걸. 좀 더 침착하게 할 걸.. 떨지 않는 것도 실력인 것을 어떡하겠나. 내 연습량이 부족했던 것을 탓해야지!!! 나는 아쉽게 6위에 그쳤다.
그러니 대만사람들을 젖히고 외국인으로서 금메달을 독식했었던 젊은날의 이찬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던 것인가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오후에 출전한 기타양식태극권 종목에서는 ‘테라피 타이치’로 한봉예 님이 금메달, 나는 6위를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소득은 고수들의 개인전 모습을 보고 안목이 넓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한 몇 년 했다고 폼 좀 잡아보려고 했던 내가 운 좋게 겸손함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한국팀의 최종결과는 한봉예 님이 금메달 하나와 은메달 두 개, 홍순길 님이 은메달, 김재심 님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음날, 몇 분은 관광을 떠나고이찬 선생님과 한봉예 선생님, 나는 황송하게도 서억중 선생님의 식사초대로 타이페이시의 자택을 방문했다. 시내 한 복판에(우리나라로 치면 압구정 현대아파트 정도?) 있는 자택은 선생님의 기운처럼 미묘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풍수에 관심이 많은 나는 가구나 서예작품 등의 선정과 배치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론으로 공부했던 풍수의 정석이 그대로 그 공간에 실현되어 있었다. 태극권에 통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부분에서도 능통하게 되나 보다.
서예에도 뛰어나신 서억중 선생님께서 친히 ‘선여인동 달겸천하(좋은 것을 남들과 함께 하고 천하에 널리 퍼지라)’라는 글귀를 써 주셨다. 글에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는 이 글만 바라보고 있어도 정신이 번쩍 드는 수준이다.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서 선생님의 몇 분 제자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여태 보지 못했던 맛있는 요리를 먹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서억중 선생님의 끝없는 제자 사랑이었다. 마치 어미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것처럼, 이찬 선생님께 계속 음식을 담아주시고 어깨를 두드려주시고 뭐라도 하나 더 주시려고 살피시는데, 마치 더 주지 못해 안달하시는 것처럼 넘치고 넘치는 사랑이었다.
91세의 연령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정하고도(91세 노인이 우리의 여행가방을 번쩍 번쩍 들어서 친히 옮겨 주셨다) 기품 있는 자세와 넉넉함이 양식 정자태극권의 요결에 딱 들어맞는 삶이셨다.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우리 도관에서 함께 운동했던 일본인 은메달리스트인 고미네에게 “고미네, 축하해요. 정말 잘 하셨어요”했더니, “저는요 아주~ 아주~ 멀었어요”라고 겸손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끝으로 이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에 대회에 참석할 수 있을 정도나마의 실력을 갖추게 해주신 이찬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부족한 제자들이 큰 무대를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고 수만 번의 잔소리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