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이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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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7월 12일 대만 타오위안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2회 만청배 국제태극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만청배 국제태극권대회는 대한태극권협회 태극권 수련인들에게는 각별히 의미있는 행사였다. 24년전 개최되었던 제1회 만청배 국제태극권대회에서 우리의 스승 이찬선생님께서 태극권, 태극검 두 종목 1위를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대한민국 태극권을 알리는 큰 획을 그으셨기 때문이었다. 이 역사적인 무대에 오를 수 있다니… 이제 갓 걸음마 단계에 있는 나로서는 참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대회에는 이찬 선생님을 모시고 박흥규 회장님, 정세장 부회장님, 정태상 전무님, 이상원 이사님, 김형식 이사님, 차승호 이사님, 그리고 나를 포함한 7인이 선수로 참가했다. 우리는 모두 이찬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고, 이번 대회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협회 임원진들이었기에 각자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벅찬 자부심을 가지고 대만으로 향했다.
나는 그동안 가장 많은 시간 수련해온 37식 종목에 참가하기로 하고 도관에서 집에서 시간나는대로 연습을 했다. 하지만 지나친 긴장 탓이었을까? 예상치 못한 족저근막염으로 인해 연습은 물론 대회참가 자체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부담갖지 말고 즐기라는 이찬 선생님의 격려말씀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아픔을 참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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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 우리의 다짐
인천국제공항에 모인 우리 일행은 웬지모를 흥분과 설레는 마음을 서로 느끼면서 화이팅을 외치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대만 도착후 우리 대표단은 맛있는 저녁과 술한잔의 가벼운 여흥속에서 함께 외국에 나와 있다는 자유로움을 느끼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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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 대회 시작
호텔에서 택시로 약 20분. 경기장 앞에 도착하니 수많은 참가자들이 형형색색의 단체복장을 입고 입장하고 있었다. 웬지모를 흥분이 온몸을 긴장감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한국대표단 자리를 찾아 짐을 내려놓고 미리 준비해간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잠시 후 개최될 개막식 퍼레이드 참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퍼레이드가 생략되었다는 주최측의 말을 들었다.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곧이어 진행된 대만 정자태극권협회 시중학사 및 우정참가한 타 문파의 웅장한 태극권 시연은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와중에 우리 주변에 있었던 대만 태극권 수련인들의 관심과 친절은 거의 감동 수준이었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섞어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들은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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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첫째 날에 우리의 정신적 지주 박흥규 회장님, 정세장 부회장님을 선두로 하여 대한민국 대표단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하였고 드디어 첫째날부터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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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만찬은 대회 참가 선수들과 심판진, 그리고 진행요원들이 모두 모여 함께하는 자리였다. 정말 큰 홀에 마련된 식당에 600명이 모여 푸짐한 코스요리를 음미할 수 있었는데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노래하며 함께 어울리는 하나된 모습은 내가 태극권 수련인으로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잔잔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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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행사의 절정은 이찬 선생님의 37식 시연이었다. 대회 관계자들의 요청에 따라 멋진 모시한복을 입으신 선생님께서 무대에 오르셔서 37식을 시연하셨다. 내 가슴속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느낌, 뿌듯함이 차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많은 대만 분들이 선생님의 시연을 담아두기 위해 무대 앞까지 몰려나와 촬영하는 대장관을 연출하였다. 이찬 선생님에 대한 대만 태극권 수련인들의 공경심으로 더욱 충만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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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나의 도전
오전 8시 이상원 이사님의 멋진 경기후, 오전 8시45분 드디어 내가 출전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진행요원이 나의 검은색 신발은 감점이 되니 흰색신발로 갈아 신으라는 날벼락 같은 소리를 하는게 아닌가? 이를 어쩌지? 그 순간 박흥규 회장님께서 신고계시던 하얀 신발을 벗어 나에게 내미셨다. 그때 그 하얀 신발이 얼마나 빛나 보이던지… 이제 나의 시간이었다. 두 명씩 출전하여 각자 시연하고 평가받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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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를 시작으로 37식을 마치는 약 6분 30초의 시간. 37식을 큰 실수없이 해냈다는 안도감. 그걸로 충분했다. 경기가 끝난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주최측에서 내 이름을 호출하는 소리를 들었다. 금메달이었다. TV에서나 보던 금메달 시상식대에 내가 올라가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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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의 시간은 지나고 우리 주력 선수진들의 멋진 경기가 이어졌다. 국제대회에서 전혀 꿀리지 않고 의연히 경기에 임하는 우리 대표단이 자랑스러웠다. 한국의 도관에서 수련하는 모습만 보았더라면 이러한 느낌은 가질 수 없었으리라. 믿기지 않지만 우리 대표단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거는 큰 성과를 내었다.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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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만찬은 대만 태극권협회의 회장님을 비롯한 원로들이 우리 대표단을 초대하여 11가지 코스요리로 극진하게 대접해주었다. 음식 하나하나 우리 접시에 담아주시는 관계자분들의 정성에 음식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대만의 태극권 고수들과 이찬 선생님이 오랜 시간동안 맺어온 우정의 깊이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정겨운 대화와 많은 술잔이 오고 갔다. 그렇게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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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 정만청 종사님 앞에서 37식을 수련하다
이번 일정의 또하나의 백미는 양식정자태극권을 창시하신 정만청 종사님의 기념관 방문 행사였다. 종사님께서 거주하셨던 집을 증개축해서 만든 기념관에서 당신의 작업공간, 직접 쓰고 그리셨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멋진 일은 기념관 바로 입구에 있는 정만청 종사님의 흉상 앞에서 37식을 시연하는 행사였다. 먼저 이찬 선생님께서 서억중 선생님 장남의 요청으로 세계 제일의 37식을 보여주셨다. 이어 기념관 관장님의 시연, 그리고 우리에게도 시연의 기회를 주셨다. 감동 그 자체였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내가 정만청 종사님 앞에서 37식을 시연하다니…. 이런 영광의 순간이 있을까? 이번 대만 국제대회 참가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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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이동하면서 한국으로부터 그간 내가 공들여 준비해왔던 코칭 자격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리더십 코치로서의 새로운 출발, 대학교수로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벅찬 기대와 함께 각오를 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의 행복과 무게를 나의 중심에서 지탱해줄 태극권이 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힘이 되었다. 배우고 또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번 국제대회 참가는 이찬 선생님의 위상이 얼마나 높고 큰지를 실감하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꾸준히 태극권을 수련하여 나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이찬 선생님과 대한태극권협회, 그리고 함께 대회에 참가하신 도우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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