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권 유튜브 영상을 찍으며 품는 희망


이찬 대한태극권협회 창립자

2021. 02. 22 by 정리=최윤호 기자
까마득한 이야기다. 군 복무 중 너무나 배가 고팠던 어느날 취사병이 없는 틈을 타 식당으로 몰래 숨어들어갔다. 뭔가 먹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먹을 것을 찾다 솥에 담긴 누룽지를 찾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딱딱한 누룽지라 먹는데 시간이 걸리게 마련. 한참 먹는데 취사병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냅다 뛰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취사병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밥주걱 비슷한 뭔가를 집어들고는 나를 뒤쫓아 왔다. 잽싸게 도망쳐 화를 면했다.덕분에 배를 조금 채웠고 나름의 성취감마저 조금은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배가 고팠다. 가난한 나라였고 무술만 수련하던 때니까, 내 형편이 나았을 리도 없다. 군대에 있으면 오히려 조금더 나은 것 아니었을까 싶다. 1970년대 어느 때쯤만 해도 우리는 한없이 초라했다. 그렇지만, 꿈은 꿀 수 있었다.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당장 살기 힘든데다 거리두기 조치로 마음에 거리낌이 생겼으니, 당연한 일.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듯, 자신의 몸을 다듬는 데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새롭게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당장 살기 힘든데다 거리두기 조치로 마음에 거리낌이 생겼으니, 당연한 일.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듯, 자신의 몸을 다듬는 데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2021년의 배고픔

2년전쯤부터 우리는 몹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태극권도관도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매주 한두명씩 새로 들어오던 태극권 입문생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젠 한달에 한두명도 찾지 않는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탓인 것 같다. 사람들이 이제는 함께하는 운동을 할 조짐도 없다. 우리 도관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관원 한명은 같은 시간대에 운동하던 사람들이 운영제한이 풀려도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 안타까워한다.

수입은 줄어드는데 물가는 오르고… 쉽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은 다음에도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리라는 희망, 좀더 부자가 되리라는 희망이 없던 시절은 없었다. 그 시절, 배가 고플 때도 열심히 운동만 하면 좋은 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지금 가장 안타까운 것은 꿈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태극권은 천년무술이다. 아주 많은 힘든 날들을 이겨내고, 변화하면서 오늘에 맞는 운동으로 거듭나고 있다. 드라마 '의천도룡기'에서 태극권 3대 사조인 장무기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결단을 내리고 원나라의 멸망을 이끌어 낸다.
태극권은 천년무술이다. 아주 많은 힘든 날들을 이겨내고, 변화하면서 오늘에 맞는 운동으로 거듭나고 있다. 드라마 ‘의천도룡기’에서 태극권 3대 사조인 장무기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결단을 내리고 원나라의 멸망을 이끌어 낸다.


다시 꿈을 꾸려면…

사실 그 시절 우리는 거창한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믿지 못했다. “1980년대 마이카 시대가 열린다”, “수출 100만 달러 시대가 열린다. 다들 배불리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된다.” 그런데 1980년대 진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생겼고, 세상이 모두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지금, 오프라인 공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무술/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민에 빠져있다. 그 시절엔 그냥 열심히 뛰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냥 하던대로만 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고, 마케팅 기법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 무술인들이 전혀 다른 세상의 문법을 익혀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힘이 들고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시대라고 단정짓지는 말자. 희망은 애써 품어야 생기는 것이고, 힘들게 챙긴 희망이어야 참된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도 유튜브 동영상을 찍고 편집한다.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지만, 세기의 명작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천년무술 태극권의 정수를 동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가치를 가진 태극권 콘텐츠임을 알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꿈을 잃어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다시 꿈을 꾸려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당장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자신을 다듬고 하나씩 쌓아가야 한다. 태극권은 언제나 그런 원리를 보여주는 운동이다. 천천히 깊이 움직이는 수련을 통해, 오래가고 깊이가는 성취를 이룬다. 우리의 삶도, 이 나라의 미래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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