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영노인(陰影老人)傳 -이 찬

2013-12-23

음영노인 국홍빈대사
중화민국의 태극권 명인(名人) 음영노인(陰影老人:그림자 노인) 국홍빈(鞠鴻賓) 대사(大師)께서는 중화민국태극권총회의 발기인이시다. 또한 고웅시태극권협회, 중화국제신전정자태극권총회을 창립하셨다. 1974년에는 국제태극권추수대회의 심판장을 역임하셨고 1995년, 96년 대만전국체전에서는 태극권심판위원회 주임위원을 역임하셨으며 그 외에도 맡으셨던 중책이 수 없이 많다.

중화민국태극권총회 부이사장 겸 남부훈련중심 주임 및 교수, 중화민국정자태극권연구회 이사장, 세계태극권연맹 부주석, 고웅시태극권협회 이사장 겸 총교련, 고웅시체육회태극권위원회 부주임위원 겸
총교련 등의 요직을 역임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하셨으며 특히 소림, 형의, 팔괘, 태극 등 무술을 애호 하셨다. 1949년 대만으로 건너온 후에는 오절노인(五絶老人) 정만청 종사(宗師)님의 문하에 입문해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가르침을 구하며 “양식간이태극권37식”과 그 계열 기예들을 전공 하셨다.
대성(大成)한 후에는 스승님의 선여인동(善與人同:좋은 것을 남들과 같이함)의 가르침을 따라 홍양권도(弘楊拳道)의 뜻을 세우시고 먼저 고웅시에서부터 보급하기 시작하셨다. 이어서 각 현, 시의 요청으로 대남(臺南), 가의(嘉義), 북항(北港), 두육(斗六), 대중(臺中), 묘율(苗栗), 대북(臺北) 등지를 순회하며 전수 하셨다. 또한 한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 독일 등등, 가르침을 구해 찾아온 외국인 제자들에게도 세심하게 지도하심이 수십 년을 하루같이 조금도 태만함이 없으셨다.
보급초기에는 지도자들의 자질이 부족함을 느끼시고 교련과 인재를 적극양성하기 위하여 훈련계획을 연구해 진수반(進修班), 연구반, 사자반(師資班) 등으로 구분하여 순차적으로 개최 하셨다. 또한 체육회의 교련 제도화 계획의 실시로 인한 총회의 명을 받들어 남훈중심(南訓中心)에서도 시, 도, 국가급 교련 및 시, 도급 심판 강습회를 차례로 개최하여 많은 교련과 심판들을 양성하셨다. 또한 많은 문하생들의 요청으로 몸소 시범하시며 권가(拳架), 추수, 산수, 태극검 등의 비디오와 DVD 교재도 제작하셨다. 이로 인해 교훈과 이익을 받은 사람들이 어찌 문하생들뿐이겠는가 !
선생님께서는 1995년 고웅시에서 전국체전을 주최하게 됨에 따라 “전통의 정자태극권37식”이 자세가 부드럽고 느슨하며 우아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정신은 안정되고 기(氣)는 고요하며 마치 행운유수와 같고 이론과 실기가 부합되며 실제에도 적용되니, 가장 적합한 남녀노소의 보건, 양생운동이고 가장 뛰어난 자위(自衛)의 권술이기에 운동의 의의에 가장 합당하다고 느끼시고 전국 체전의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키고자 온힘을 다해 노력하셨다. 그 결과 정자 태극권37식과 추수가 전국체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니 태극권사(太極拳史)에 새로운 장을 여는 큰 공헌을 세우셨다.

그러나 이는 단지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일 뿐이고 더 나아가 반드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채택되어야 한다고 하시며 태극권계의 전 동호인들이 일치단결하여 이 목표를 향해 매진 할 것을 간절히 희망하신다.

마잉주 중화민국 총통과 국홍빈 대사

 

천수이비옌 중화민국 전 총통과 국홍빈 대사
또한 정자태극문의 절예를 더욱 확대 발전시키는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킬 수 없다 하시며 지칠 줄 모르고 노력하셨다. 더욱이 장애우들을 위하여 행공심법과 태극권의 동작을 그들에 맞추어 정성껏 지도하심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주셨다. 정녕 선생님의 열정과 꾸준하심, 그리고 박애정신(博愛情神)은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므로 중화무예류신전장(中華武藝類薪傳獎)의 수상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국홍빈 대사 중화무예류신전장(中華武藝類薪傳獎) 수상
선생님의 호는 소태(蘇泰)이고 1917년 상해에서 출생하셨다. 인품은 온화하면서도 대범하시다. 태극권이 건강장수의 운동이라는 것을 97년의 건재하심으로 몸소 증명해 보이셨다. 태극권예는 입신의 경지에 다다라 한 번 거동하면 순풍처럼 물러나시고 질풍처럼 덮쳐 오신다. 변화는 불측(不測)하고 진퇴는 음영 같아 들어가려야 들어갈 수 없고 물러나려야 물러날 수 없다. 그러니 음영노인이라는 칭송이 어찌 마땅하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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