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뒤로 하고,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새해를!



이찬 대한태극권협회 창립자

2021. 12. 27 by 정리=최윤호 기자

어렸을 때의 일이다. 시골 등굣길. 구멍 숭숭난 돌담 많은 길을 지나 학교에 가야했다. 바로 옆 돌담 옆으로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더니, 하얀 뱀이 휘익 돌틈으로 지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잠깐 놀라며 쳐다보다 학교에 갔다. 수업시간 내내 내 어린 마음은 그 하얀 뱀에 가있었다. 신기했는데…. 잡았어야 했는데… 귀한 놈일텐데… 아쉬움과 흥분이 교차했다.

며칠전 태극권 수련생들과 연말연시 덕담을 나누다, 오래전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쉽게 지나친 일들, 아쉽게 놓친 것들, 열심히 했지만 이루지 못한 일들, 1년전 새해결심을 하고는 그냥 팽개쳐놓았던 결심들…. 이런 것들이 모두 스쳐 지나갔다. 나뿐 아니라, 함께 있던 모든 수련생들도 그러했으리라.

얼마전 2021년을 결산하며 도관에서 승단심사를 했다. 1년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이는 심사다. 목표를 이뤘든 못이뤘든 전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이찬태극권도관얼마전 2021년을 결산하며 도관에서 승단심사를 했다. 1년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이는 심사다. 목표를 이뤘든 못이뤘든 전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이찬태극권도관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는 놓친 물고기?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는? 놓친 물고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한다는 농담이다. 사실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과 희망일 것이다. 채널A의 <도시어부>라는 낚시 프로그램을 보면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낚시가 인생의 낙이라는 배우 이덕화 씨가 “아이, 빠졌다”라고 소리치면서 낚시바늘을 털어내고 도망간 물고기를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야, 8짜였는데…”, “저 정도면 최대어였을텐데…”,  “틀림없이 감성돔인데…”

희망섞인 탄식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진짜 분노한 것은 아니다. 아쉬움에 마음을 상한 것이 아니다. 큰 물고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희망의 순간이요, 다음에는 꼭 잡으리라는 다짐의 외침이요, 두고 두고 써먹을 화끈한 무용담이다. 그러니 계속 낚시를 하는 것이리라. 평생을 그렇게 했고, 또 새해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어느 영역에나 그런 순간들은 있는 법. 코로나19에 휩쓸려 지낸 시간이 벌써 두해다. 2021년 한햇동안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겠지, 다 털어내고 씩씩하게 운동하는 시간이 오겠지,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거듭되는 거리두기와 방역강화 조치들 속에서 ‘아, 이제 끝내야하나’ 하는 절망의 시간들을 보냈지만, 그래도 접지 않고 또 도관의 문을 열었다. 연말을 맞아 승단 심사와 송년회를 준비했지만, 송년회는 취소하고 간단히 승단 심사만 진행했다. 같이 운동하며 나누는 정깊은 시간은 또 뒤로 미뤄야 했다. 아쉽기 그지없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바람처럼 물처럼… 유연함이 태극권의 원리

그렇게 보낸 2021년이 끝나고 있다. 뚜벅뚜벅 걷는 소의 해가 저물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진정한 일상회복을 이뤄내길 기원해 본다. / 캔서앤서DB다가오는 새해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진정한 일상회복을 이뤄내길 기원해 본다. / 캔서앤서DB


새해엔 호랑이처럼 용맹정진하는 기회를!

소의 해가 가고 호랑이 해가 오고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호랑이가 일종의 신물이다. 우리는 무슨 생각을 갖고, 무슨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이할 것인가. 대통령선거라는 큰 정치적 이슈도 있고, 코로나19 극복이라는 사회적 큰 일도 있고, 무엇보다 일상복귀와 경제회복이라는 생활적인 목표도 있다.

가족의 행복과 수련생들의 건강, 우리 태극권도관의 정상화 같은 것들이 내게는 새해의 소망이다. 그중에서도 태극권도관의 정상화는 아주 심각한 소망이다. 다른 운동시설처럼 경제적 한계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건강을 위해 꼭 지켜야할 것들이 방역의 이름으로 쪼그라드는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심신을 수련해 면역력을 강화하고 사회의 안전판이 될 수 있는 운동시설이 전염병 때문에 기피시설처럼 치부되는 상황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 전체가 챙기지 못했던 건강과 안전, 새해는 꼭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판단하고, 제대로 행동하면서 일상회복을 이뤄내길 기원한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르는 법. 때로는 대범하게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딱 좋은 ‘호랑이 해’ 아닌가. 호랑이처럼 멀리 보고, 과감하게 산맥을 뛰어넘는 용기가 내게도, 우리사회에도 깃들이기를 기원한다.

2022년 새해가 다가온다. 호랑이의 우렁찬 포효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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