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4일
돌아오는 길에 무술용품점에 들려 철선과 신발 등을 사고, 호텔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니 벌써 저녁때가 되었다. 휴~정말 빠듯한 스케줄이었다. 이날 저녁식사도 한국과 일본, 중국음식의 퓨전 요리를 하는 식당에서 진정의 선생님과 함께 했다.
식사를 마치고 타이페이의 야시장을 구경했는데 갖가지 생활용품은 물론,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중국 무협영화에서 보았던 방울토마토로 꼬치를 만들고 거기에 꿀을 바른 빨간 과일꼬치였는데, 참 맛있었다. 늘 영화에서만 보았던 것을 실제로 먹어보니 흥미로웠다. 또 진 선생님의 권유로 목에 좋다는 살구차도 샀는데 실제로 얼마 전 집에 놀러온 친구가 목이 붓고 목소리가 거칠어져서 한 잔 듬뿍 주었더니 금방 호전되었다.
11월 4일, 드디어 월드컵태극권대회가 열리는 날이 왔다. 단체전은 4일에 하고, 개인전은 5일에 하게 되었다. 4일 단체전에 대해서는 박정훈님이 쓴 참가기가 있기에 다시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몇 가지 내가 인상 깊게 본 것만을 쓰려한다.
오전에 개막식 후, 국홍빈 선생님과 이찬 선생님, 그리고 첨덕승 대회장 등 태극권 고수 선생님들의 멋진 시범이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 본격적으로 시합이 진행되어 어느 덧 우리팀 출전시간도 왔다. 우리 팀은 13식과 정자태극권 37식 두 종목의 단체전에 출전하였는데, 먼저 37식에 출전하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순서가 되어 정자태극권을 평소에 하던 대로 펼쳐보였다. 중간에 박정훈님이 정말 재밌는 실수를 하긴 했지만(혼자서 사단편을 한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을 최선을 다해 펼쳐 첫 관문을 열며 본격적으로 대회에 빠져들게 되자 아주 짜릿한 기분이 느껴졌다. 박정훈님은 혼자서 빗나간 단편을 취한 순간, 아마 아찔했을 것이다. 시합이 끝나고 내가 농담 삼아 “아! 정말 짜릿하네요. 드디어 한 가지는 끝났어요. (아저씨는)아찔했죠? ㅎㅎ” 하고 얘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박정훈님 참가기에 있으므로 생략-
13식 시합도 곧이어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시합코트로 이동했다. 나는 어찌됐든 이 13식만이라도 정말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팀원들과 함께 13식을 시작하였다. 이미 37식을 한번 하고 난 뒤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모든 것이 보다 더욱 고요해졌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오늘 이것만은 잘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그 생각마저도 사라질 정도로 마음도 깊이 고요해졌다.
그렇게 강물 흐르듯 13식을 펼쳐나가 어느 덧 후반부에 들어섰다. ‘제’ 동작에 이어 ‘안’을 할 때, 문득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는데, 나는 내가 잘해서 그러는 것 인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찬 선생님께서 나를 큰소리로 부르시는게 아닌가? 고개를 돌려본 나는 아찔했다—-. 그 부분의 13식에서는 ‘제’를 한 뒤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야 하는데, 나 혼자 몸을 돌리지 않고 ‘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 옆에 있던 박정훈님이 몇 번이나 불렀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로 그것을 듣지 못했다. 불과 몇 분전에 박정훈님에게 농담을 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내가 이런 아찔한 실수를 하게 되다니… 대회 준비로 인해 많이 애쓰신 이찬 선생님과 최환 회장님, 팀원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너무나 미안했는데 오히려 팀원분들이 나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다.
시합 후에는 대회 주최측에서 마련한 만찬에 이찬 선생님을 초대했는데, 최환 회장님과 우리 팀원들도 동행해 정말 맛있는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밤 11시 반쯤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시합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대회 첫 날이어서 그런지 잠도 오지 않아 이찬 선생님과 한 방에 모여 약간의 술과 함께 오늘 대회에 대해 새벽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11월 5일, 드디어 개인전이 열리는 날이다. 나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아마도 개인전에 더 많은 의미를 두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니 말이다. 대진표를 보니 우리팀에서는 내가 제일 나중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전체에서도 뒤쪽에 속했다. 대만에 온 뒤 연습이 부족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회장 곳곳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나도 적당한 곳을 찾아 연습했다. 개인전은 한 코트에 선수 3명이 함께 실력을 선보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태극권을 시작하였다. 방금 전까지 평소실력을 발휘할 만큼은 충분히 연습했기에 어제보다는 훨씬 원활하게 공가(功架)를 펼칠 수 있었다. 차츰차츰 마음이 고요해지며 포호귀산, 사단편, 주저간추, 그리고 도련후까지 했을때, 잡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사비세에 이어 운수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에 나는 동작이 정말 막힘없이 물 흐르듯 원활함을 느꼈다.
그렇게 운수를 몇 번 반복하다가 이제 단편하세를 할 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 느낌을 믿지 못하고 과연 내가 운수를 5번을 모두 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운수 5번이 마치 한 동작처럼 지나가 몇 번을 했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한 번 부족한 것 보다야 한 번 더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단편하세를 하려다 결국 운수를 우운수, 좌운수 이렇게 두 동작을 더했다. 권가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운수를 5번할 것을 7번을 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 잘 해나가고 있었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미처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실수였다. 스스로도 황당했다. 하지만 내가 안일한 마음으로 그리한 것도 아니고 그 순간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 그리고 곧이어 병장기 시합장으로가 태극선을 출전하고 나니 어느 덧 대회는 막바지에 들고, 곧이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비록 나는 실력이 부족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시상결과를 보니 우리팀은 눈부신 성과를 얻어 아주 기뻤다. 우리팀은 13식 단체전은 국외조 1위, 개인전 태극권가는 강금강 전무님이 1위, 안찬호 조교님이 2위, 나는 6위를 했다. 시합의 기본적인 기준도 지키지 못했는데 6위라도 했으니 다행이었다. 13식은 나의 실수로 팀원들에게 굉장히 미안했는데, 1위를 해 놀랍기도 하고 기뻤다. 아마도 13식이 필수 종목으로 채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팀들의 준비가 좀 미진했던 것 같다. 운이 좋았다. 그리고 개인전 병장기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강금강 전무님 태극검 2위, 김태우 사무국장님이 태극선 3위, 나는 태극선 5위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