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기를, 기로 몸을 움직여라


이찬 대한태극권협회 창립자

2020. 05. 29 by 정리=최윤호 기자

이심행기 이기운신(以心行氣 以氣運身).

마음으로 기를 움직이고, 기로 몸을 움직여라. 태극권을 비롯한 기공에서 중요한 표현이다. 몸과 기운과 마음(정신), 이 세가지는 함께 있으나 다른 오묘함을 지닌 천지우주와 인간의 작동원리다. 어찌보면 어렵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원리가 깨달아지기도 하고, 천천히 운신의 수련을 하다보면, 그 원리가 체득되기도 한다.

이 원리를 말로 설명하기 위해, 생각을 거듭하다 떠오른 것이 바로 물이다. 물의 물리적 특성을 알면 신, 기, 심의 3박자 원리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듯하다.

물은 유연하고 부드럽지만 도도탕탕하게 흐를 수도 있고 잔잔하게 모든 것을 품고 머물 수도 있다. 그런데 물은 2가지의 다른 형태를 또 갖고 있으니, 바로 얼음과 수증기다. 얼음은 굳어 있는 형태이지만 힘을 가하면 잘 움직이고 파괴력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도 깨지기 쉽다. 수증기는 무형의 것 같지만, 온도도 갖고 있고, 물리적 힘도 있다. 거대한 기차나 배를 움직이는 것도 바로 이 수증기다. 터빈을 돌리는 힘을 가진 수증기도 물의 변형인 것이다.

영국의 국민화가 윌리엄 터너가 60대에 그린 '눈보라 속의 증기선'.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터너는 돛대에 몸이 묶인 채 몇 시간 동안 거친 파도를 직접 체험했다고 알려져 있다. 소용돌이치는 눈보라는 태극의 혼융처럼 보이고, 태풍과도 맞서는 증기의 경이로운 힘도 느껴진다. / 테이트 미술관 캡처
영국의 국민화가 윌리엄 터너가 60대에 그린 ‘눈보라 속의 증기선’.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터너는 돛대에 몸이 묶인 채 몇 시간 동안 거친 파도를 직접 체험했다고 알려져 있다. 소용돌이치는 눈보라는 태극의 혼융처럼 보이고, 태풍과도 맞서는 증기의 경이로운 힘도 느껴진다. / 테이트 미술관 캡처


태극권은 기를 수련해 몸과 정신을 완성한다

물은 기요, 얼음은 신이요, 수증기는 심이다. 기운과 몸과 마음이다. 태극의 사상도 음양의 조화로움 속 기의 흐름에서 형태가 생기고 정신이 생기는 것이고, 율곡과 퇴계선생이 이야기한 이기론의 주기론과 주리론도 이와 비슷한 생각의 흐름을 담고 있다.

태극권은 기의 흐름을 중시한다. 내공이라고 하는 기를 수련함으로써 무술과 건강을 닦는 운동이 태극권이다. 기가 흐르는 도구가 몸이요, 기를 관장하는 것이 정신이다. 정신은 잘 닦인 기가 마침내 이르는 곳이기도 한다.

태극권은 그래서 주먹으로 때리더라도 주먹은 기운을 담은 그릇일 뿐이다. 실제로는 기를 쏘아내는 것이다. 상대의 공격은 몸으로 흘리면서 내 기운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반격의 밑천이 되도록 한다. 상대의 기와 나의 기가 합쳐져 반격이 가능해진다.

이 실제적 수련과정을 통해 진정한 도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마음을 수련하는 내가권의 절정인 셈이다.

태극권의 밀어내기 동작 '안'. 몸안의 기운을 양손끝으로 쏘아내는 발경의 동작 중 하나다.
태극권의 밀어내기 동작 ‘안’. 몸안의 기운을 양손끝으로 쏘아내는 발경의 동작 중 하나다.


마음으로 몸을 다르려야 순리에 따르는 삶 가능

다시 이심행기 이기운신(以心行氣 以氣運身)으로 돌아가 보자. 마음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 억지로 힘 쓰지 않고 부드럽게 운행하는 것이다.

오래전 친구들과 예당저수지로 낚시를 간 적이 있다. 저수지 가운데 있는 낚시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폭풍이 예보됐다. 저수지 관리인은 혹시 모르니 비상시 사용하라고 배를 한척 집 옆에 묶어두고 떠났다. 밤이 깊어가는데 점점 바람이 거세지고 물결이 일었다. 우리는 혹시나 배가 떠내려갈까 싶어 배를 기둥에 바짝 붙여 묶었다. 밤새 쿵쿵쿵쿵 배는 기둥에 부딪혔고, 미명 무렵 바람이 멈춰 우리는 뭍으로 나왔다. 그런데, 배 상태가 엉망. 관리인이 말했다.  “그냥 멀찌감치 묶어 두었으면 혼자 둥둥 떠 아무 문제 없었을텐데….”

물결 위의 쪽배를 생각해 보자. 혹은 시냇물 위의 나뭇잎도 좋다. 힘 꽉주고 무게로 버티는 것보다 그냥 바람을 타듯, 물결을 타듯 부드럽게 출렁이는 것이 안전할 때가 많다.

우리의 건강도 마찬가지. 애써서 힘을 빡주고 버티는 것은 몸을 망치는 방법이다. 기운의 흐름을 막을 뿐이다. 순리에 따르라는 말은 일을 처리하는 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꼭 맞는 말이다.

마음으로 몸을 컨트롤해라. 순리에 따르는 삶이 건강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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