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조장’하지 말아야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긴다


이찬 대한태극권협회 창립자

2022. 04. 29 by 정리=최윤호 기자

호연지기(浩然之氣). 사람의 마음이 우주적으로 넓고 크고 올바를 때 쓰는 말이다. 자연을 호흡하고 큰 생각을 하면서 여유를 가져야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다. 태극권처럼 큰 철학이 담긴 운동을 하면 그같은 호탕한 기운을 얻기 좋다. 싸움을 잘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넓어 얻게 되는 경지다.

역사속에서 호연지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고, 현대에는 개인의 행복과 밀접하다. 자연이나 몸의 건강과 거리를 두고, 기계와 컴퓨터 속에 함몰된다면, 절대로 맛볼 수 없는 큰 자아의 발견. 태극권은 그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태극권을 수련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호연지기가 생긴다. / 캔서앤서DB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태극권을 수련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호연지기가 생긴다. / 캔서앤서DB

 

맹자의 호연지기, 잊지않고 있되 조장해선 안된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말하면서, 물망물조(勿忘勿助)를 이야기한다. 호연지기를 얻으려면 그 정신을 늘 잊지 않되 억지로 키우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기운이 바로 호연지기다.

물망물조는 옛날 전국시대 송나라에서 기원한 이야기에서 나왔다. 송나라 때 한 농부가 벼농사를 짓고 있었다. 벼를 심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벼가 자라는 것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농부는 논에 나가 벼들을 쭉쭉 잡아뽑았다. 벼의 키가 한뼘쯤 커졌다. 만족한 농부는 집에 돌아가 즐겁게 잠을 잤고, 이튿날 논에 다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키를 한뼘씩 키워놓은 벼들이 다 말라죽어 버린 것 아닌가. 벼를 잘 키우겠다고 뿌리를 뒤흔들어 뽑아놓으니 벼가 말라죽을 수밖에. 벼가 잘 자라기를 바란다면, 순리에 따라 농사를 지으며 기다려야 한다. 억지로 키를 키운다고 벼가 잘 자라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키를 키우는 것을 ‘조장(助長)’이라 한다.

호연지기를 얻고 싶다면, 그것을 잊지는 않되 억지로 조장해서는 안된다.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아라. 그것이 맹자의 가르침이다. 맹자는 매우 실용적인 사상을 지닌 철학자다. 호연지기가 실제로 매우 효과적인 정신이 아니라면, 결코 이렇게 강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잘 하고 싶으면, 억지로 조장해서는 안된다.

태극권은 예로부터 개인의 건강과 호연지기를 기를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호국무술 역할도 해왔다. / 이찬태극권도관태극권은 예로부터 개인의 건강과 호연지기를 기를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호국무술 역할도 해왔다. / 이찬태극권도관

신체의 한계와 두려움 이기는 정신의 힘

정신의 힘, 마음의 힘은 사실 무한히 크다. 무술에 빠져 소림권과 태권도는 물론, 다양한 무술을 익히고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던 시절에 나는 기공과 참선도 했다. 무술의 기술은 충분히 익혔으니, 내공을 쌓아 진정한 고수가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40년 가까운 세월 이전인 그 무렵,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자신감에 다른 이들과 훈련을 할 때, 끝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운 넘쳐남을 경험했고, 어떤 경우에도 어느 누구에도 지지 않는 육체적 퍼포먼스를 해낼 수 있었다. 작은 몸집이나 약한 힘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육체를 지배하는 마음의 힘을 늘 느끼며 고양된 상태에 머물렀었다.

그때는 그것이 호연지기라고 믿었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던 시절이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된 깊은 내면의 힘이라기보다는 조금은 ‘조장’된 억지를 품고 있었다. 다행히 그 이후 태극권을 수련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기의 수련으로 갈무리되면서, 참된 심신의 조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태극권의 힘으로 깨닫게 된 것은 자연스럽고 거대한 정신의 힘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의 진정한 힘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수련생들과 하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의 놀라운 정신력에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전쟁을 계속해 국민들이 괜히 죽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힘은 정의와 함께 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대한 정신은 몸을 지배하며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 ‘조장’ 이야기에 등장하는 송나라는 역사 속에서 비겁하게 평화만을 이야기하다 망한 나라의 전형으로 꼽힌다. 당장 더 강해 보이는 적과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을 수 있는 정신력, 그런 것도 호연지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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