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태극권 교류대회 참가기–박영주이사

2007.6.2.

때 이른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6월의 첫 토요일 오후 진선여중 체육관을 들어서니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늦게 장소를 찾느라 흘린 땀 씻어내기 무섭게, 그간의 배운 솜씨를 실수 없이 보이기 위한 회원들의 연습 열기 또한 체육관 안을 더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그간 도관만 오가며 만났던 회원들 중에 자주 보지 못했던 여러분을 뵐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이찬 선생님의 문하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태극권을 연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남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간에 국제적인 행사가 있기는 하였으나 직접 그 자리에 함께 해보지 못한 본인의 입장에서는 외국의 그것도 태극권 종주국의 고수들을 만나 그들의 실력을 직접 확인할 거라는 기대는 뜨거운 태양과 체육관 안의 열기가 원인이 아니더라도 얼굴에 홍조를 띠게 함이 분명하였다.

 

드디어 중국에서 도착한 여러 어른-나에게는 분명 나이 드신 분들임에 분명했다-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한태극권협회와 중국 태극권 고수들의 주거니 받거니 시연회가 이어졌다. 우리 쪽의 여러 시연은 수줍게 선보인 것도 있지만 이찬 선생님의 시범이 이어지면서 그 수준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도관에 나가는 횟수가 줄면서 자주 접하지 못했던 선생님의 시연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며 회원들 모두 자부심을 가질 또 다른 기회를 얻었다. 우리의 시범이 초보들의 긴장된 흔들림에서 선생님의 유려한 몸짓까지 이어진 반면 중국 측의 시연은 모두 고수들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자국의 행사준비로 많은 인원이 빠지고 40명 남짓한 인원들이 왔다고 소개가 되었고 그 중에서 실력을 선보인 분들은 모두 오랜 수련을 통해 일정 경지에 이른 분들임을 이 하수에게도 한 눈에 드러났다.

대중 매체를 통해 가끔 중국의 폭 넓은 태극권 인구를 접하면서 우리도 공원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수련을 하는 날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이런 결과까지 감히 상상하지 못하였다. 70~80대의 노인들에게서 이런 기가 뿜어져 나오는구나. 과연 “상록수인 소나무가 다른 낙엽수와 구별되는 것은 겨울이 된 뒤의 일이다”라고 한, 공자의 가르침은 그 끝이 있구나 하는 감탄의 연발이었다.

 

현재 교련으로서의 활동에도 전혀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뛰어난 기량과 안정된 몸가짐은 그 자리에 있는 이들로 하여금 모두 반드시 상록수가 되라는 따뜻한 격려이기도 했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사실은, 도장에서 수련하면서 가끔, 아니 자주 느끼는 나만의 비애를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태극권은 너무 남성 중심이어서 여자들이 끝까지 이 운동을 하는 것이 가능 한가’라는 나만의 의문을 가진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자들이 현실적으로 도관을 찾는 여유와 용기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과 그리고 도관에서조차 수련의 분위기가 익숙지 않아 어색함이 이어지는데다 아직 우리의 태극권이 대중화되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중국 고수는 대부분이 여자분들 그것도 노년층이 분명하였고, 그 기량이 곧추 세운 등골에 어깨를 가라앉힌 채 마음으로 기를 행하고 기로 몸을 다스리고 있음과 외유내강의 흐름을 확실히 보여줌으로써 나의 마음속에다 정말 상록수 한 그루 옮겨 심게 된 것이다.

엄마표 태극권을 확인하고파 함께 따라온 딸이 엄마의 어색한 몸동작과 그 분들의 실력을 확인하고서 엄마의 계속 수련을 요구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상록수가 되고픈 욕구를 충만 시킬 수 있었다. 태극권을 통한 몸과 마음의 수련에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으므로 지금 수련 중인 모든 여성 회원들이 끝까지 정진하여 도관을 빛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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