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멈춘 태극권 도관…’심신수련’의 초심을 생각한다


이찬 대한태극권협회 창립자

2020. 09. 07 by 정리=최윤호 기자

태극권의 산실, 무당산(武當山). 중국무술의 양대산맥인 소림사는 숭산(崇山)에 있는 고찰이고, 무당산에는 태극권의 모태 무당파가 기거한다. 무당산에는 300개에 달하는 도교의 사원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당나라 때부터의 건축물들이 섞여 있지만, 대부분 명나라 황실에서 지어준 것들인데 무당산이 번성일로에 이르렀을 때 9궁(宮), 9관(觀), 36암당(庵堂), 72암묘(庵廟), 39교(橋), 12정(亭)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보인다.

중국 무당산에는 수많은 도교 사당들이 있다. 당나라 때부터 지어져 온 사당들. 세상과 거리를 두고 불로장생을 꿈꾸며 도를 닦아온 도사들이 아직도 이곳에 머물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삶고 있다. /wikipedia
중국 무당산에는 수많은 도교 사당들이 있다. 당나라 때부터 지어져 온 사당들. 세상과 거리를 두고 불로장생을 꿈꾸며 도를 닦아온 도사들이 아직도 이곳에 머물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삶고 있다. /wikipedia


천하절경 속에서 은거하며 불로장생을 꿈꾸던 선인들

무당산의 주봉은 천주봉인데, 해발 1613m다. 그다지 높거나 엄청나게 험한 산은 아니지만, 그 수려한 자태가 도를 닦기에 딱 맞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72개의 봉우리와 36개의 기암절벽, 24개의 계곡하천으로 이뤄진 도가의 터전이다.

도교의 수련자들을 도사(道士)라고 한다. 이들은 불로장생을 꿈꾸며 채식을 하면서 도를 닦아왔다. 1000년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300~4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사람들과 교류하면 도를 논하고, 태극권 같은 무술을 연마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진정한 도를 추구하는 것.

어쩌면 오래전 그들의 모습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에서 지금 나에게, 모든 태극권 수련자들에게 필요한 생활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른바 ‘2.5단계’의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다. 커피도 주문해 마시고, 음식점에서 취식과 담소도 나눌 수 있고, 출퇴근 지하철에 사람들이 북적여도 되지만, 조용히 건강과 정심을 추구하는 도관은 문을 열어놓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뭔가 수긍하기 어렵지만, 상황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는 일.

몇몇 교회와 운동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으로 나왔다. 안타까운 일이다. 종교와 운동시설이 문 닿은 요즘,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와 치유를 얻어야 할까.

몸과 마음을 수련하며 건강은 물론, 면역력도 강화시킬 수 있는 곳인 태극권 도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도관을 찾아 수련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었는데, 최근엔 아예 현장 수련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며 건강은 물론, 면역력도 강화시킬 수 있는 곳인 태극권 도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도관을 찾아 수련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었는데, 최근엔 아예 현장 수련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와 강제격리의 시간들, 자아와 마주서 보자

속초에 다녀왔다. 도관 문을 닫고, 마음을 다스리리고, 새로운 기운을 얻으려고. 태풍이 동해안 일대를 덮친 시점이라 바람이 거세고, 날카로웠다. 바닷가의 강풍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그 물보라 치는 칼바람이 얼마나 사나운지.

그 바람이 마음과 몸에 상처가 될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치유가 된다. 모든 것을 녹여 따뜻하게 이어줄 것처럼 바람이 내 몸을 관통해 갔다. 이런 것이 바로 자연의 힘이구나 싶었다.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지고, 그 속의 아주 작은 한 부분으로 녹아들 때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우친 며칠이다.

태극권은 본래 자연의 이치, 우주의 이치를 인간의 몸과 마음으로 구현할 때 가능한 치유의 무술이다. 거대한 우주의 이치에 나를 맞춰 겸손해져야 하지만, 바로 그 순간우리는 우주만큼이나 넓은 자아를 획득하게 된다. 내 몸의 힘을 최대한 버리고, 남의 힘과 땅의 기운을 내것으로 이용할 때 무한히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태극권의 길이다. 그래서 태극권 수련은 곧 도닦음이다.

억지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과 마주서야 하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이다. 8월 30일 즈음부터 9월 13일까지의 보름동안(더 길어질지도 모르지만)은 아마도 역사에 남게 될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동안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이 강제로 돌아서서 자신과 마주서야 했던 시간으로….

태극권은 원래 자연과 하나가 돼 자신과 마주설 때 진정한 수련이 이뤄진다. 가능하다면, 21세기 오늘 ‘마주섬의 시간’이 어떤 형태로든 가치있는 열매를 남기는 치유의 시간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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