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세계국술대회—홍순길

2012년 10월 15일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았다. TV에서 소개할 때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보았는데 영 아니다. 지루하기만 하다. 다시 ‘매트릭스’를 보았다.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정말 재미있다. 1999년도에 제작된 영화인데도 전혀 구닥다리 냄새가 안 난다. 태극권도 그렇듯이 좋은 것은 세월이 흘러도 계속 진가를 발휘하는 모양이다.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더 보았으면…

2012년 10월 1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내리니 오후 10시 반. 6시간이나 걸렸다.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열대지방이 맞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낡은 승합차를 탔다. 요금은 왜 이리 비싼지…미국인 심판진 두 명과 같이 탔는데도 선생님과 나를 합해 15만원이 넘는다. 차는 후지지만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런데 가도 가도 호텔이 안 나온다. 2시간을 가고 나서는 계속 산을 오르다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 해발 2,000m 위에 위치한 운정(云頂) 리조트란다. 호텔 3개에 놀이시설, 카지노를 합한 것으로 생각하면 될 듯. 그러나 엄청난 규모다. 숙박한 곳은 저렴한 수준의 ‘First World Hotel’. 방에 들어가니 말이 호텔이지 우리 시골동네 모텔 수준이다. 방은 비좁지 비누도 없지 칫솔 치약도 없다. 편의점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그런데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도 없고 대회에서 제공하는 점심 도시락도 없단다. ‘하느님 맙소사. 대회가 마음에 안 든다’


대만에서 열린 세계태극권대회와 비슷한 일정 때문에 우리나라 팀은 선생님과 나뿐이었다. 경기장은 호텔에 딸린 넓은 컨벤션 룸에서 개최되었다. 개막식(?)은 저녁에 하고 개인전부터 시작이다. 대만 대회와 달리 시합장 옆에 의자들을 배치하여 선수나 참관인이 마음대로 구경하고 사진 비디오도 찍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이찬 선생님은 오랜만에 진정의, 심우순, 유진홍 선생님을 만나 매우 즐거워하신다.

오후에 참가한 첫 경기가 태극검54식. 바닥이 카페트라 불편하다. 마루면 얼마나 좋을까! 실수 없이 했고 금메달은 땄으나 아쉬움이 남는다. 선생님께서 “너무 밋밋하다. 자신 있게 속도의 변화를 살리면서 했어야 한다”고 하신다. 많은 선수들이 검술의 기본도 모르고 한다고 답답해하신다. 그래도 내가 볼 때는 검술42식 경기용 투로 출전자 일부는 정말 잘하는 것 같다. 오랫동안 수련한 몸놀림이 보인다.

개막식. 각 나라별로 단체별로 피켓을 들고 입장한다. 말레이지아의 태극권 참가자가 엄청 많다. ‘화교는 전 세계적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우리팀은 나 혼자라 옆에 서 있는 안면 있는 말레이지아 여성선수에게 부탁하여 인원지원을 받아 입장하였다. 자기는 3년 수련하였고 팀장은 17년 했는데(나중에 단체전 할 때 봤는데 정말 잘함) 남편이 사범이란다.

내빈 소개와 인사말 등등… 너무 길다. ‘이 사람들은 선수와 참관인들은 안중에 없는 건가? 왜 이리 길고 지루하게 시간을 끄나?’ 공연시간이다. 사자춤 공연이 압권이다. 서커스의 묘기 수준이다. ‘중국인들의 사자춤 공연은 모두 이렇게 수준이 높은가?’ 다음으로 특별히 이찬 선생님의 태극검 54식 시범. 정말 잘 하신다. ‘나는 얼마나 해야, 언제쯤 저 만큼 할까?’

저녁 시간. 리조트라 시중의 3배의 가격이지만 그래도 비싸지 않다. 다만 술이 맥주 밖에 없다. 소주나 고량주, 위스키를 구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맥주를 반주로 하는데 “맙소사” 캔 하나에 8,000원 이란다. 밥값보다 맥주값이 훨씬 비싸다.

다음 날 태극권 37식 경기. 참가 선수 중 한 명이 아는 척 한다. 말레이지아 유진홍(刘津洪) 선생님 제자라는데 이찬 선생님을 2004년 싱가폴대회에서 뵈었단다. 정자태극권37식 시범을 봤는데 정만청 선생님과 너무나 똑 같이 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 받았다고 한다. 그는 동메달을 땄다.

              

여기의 대회가 좋았던 점은 번외 경기다. 활보추수에서 3등한 친구가 오가는 선수를 잡고 추수를 통하여 실력을 겨뤄 본다. “비무초친” 비무를 통하여 배우자가 아니라 친구를 사귄다. “Are you Korean? I like Korean. Can I practice Push Hands with you?” 그동안 추수를 많이 해 보지 않아 자신이 없지만 해 본다. ‘진가네? 어 좀 다르다’ 잠시 하다가 3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어라? 또 어떤 사람이 말을 건다. 정말로 하이 레벨의 고수를 소개해 준단다. 손을 대보니 진가 계열인데 진짜 고수의 느낌이 난다. 그에게 몇 가지 조언을 들었다. 다 아는 얘기… 그러나 “당신은 권가는 아름다운데 아직 쿵푸가 부족하다”고 말해 준다. 아하! 깨달음이 온다. 대만에서의 예상외의 낮은 점수… 그 동안 수없이 들었으면서도 무신경하였던 “권가를 할 때 요철이 없어야 한다” “송이 되어 침이 되어야 한다” ‘갑갑…금메달이 무슨 소용인가? 10년 이상 했으면 사람들한데 “정말 잘한다”라는 소릴 들어야지…’ 그러나 좋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였으나 객관적인 평가를 통하여 수준을 알았고, 문제를 깨달았으니 되었다. 교정에 많은 시간과 어려움은 필요 없겠다.

이찬 선생님께 초기에 태극권을 가르쳐 주신 심우순 선생님이 아드님 두명과 캐나다 백인 제자 한명으로 선수단을 구성하여 추수 시합에 참가하셨다. 심 선생님의 제자들은 활보/정보추수 부문에서 모두 금메달, 은메달을 차지하였으며, 유진홍 선생님의 제자 정천부(郑泉富)가 동메달을 딴 것을 합하면 우리 정자태극권 문인들이 추수에서 메달을 휩쓸어 뿌듯했다.

다음날 이찬 선생님과 나는 리조트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인천행 밤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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