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된다는 것, 스승을 섬긴다는 것



이찬 대한태극권협회 창립자

2021. 05. 18 by 정리=최윤호 기자

며칠 전이 스승의 날이었다. 나의 스승님들은 내 마음 속에 계시지만, 늘 그립다. 태극권이라는 낯선 무술을 나에게 가르쳐 준 분들은 내 인생의 큰 흐름을 바꿔놓은 분들이다. 그들이 있어 외가권을 익힌 걍팍한 인간성을 버리고, 강물처럼 흐를 수 있는 품성을 기르는 태극권을 배울 수 있었다.

모든 무술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중시한다. 그래서 한번 연을 맺으면 다른 문파의 무술을 익히기 어렵고, 스승을 떠나면 패륜아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한 인간, 한 무술인이 자신의 수준을 높여가며 더나은 인간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자신의 후배들, 후세에 자신이 가진 것을 전하는 것이 진정한 수련 아니겠는가. 스승의 날을 보내며 스승이 된다는 것, 스승을 섬긴다는 것을  생각해 봤다.

이찬태극권도관에서 배사식이 열렸다.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과 그들의 선배들이 서로 맞절을 하며 예를 표하고 있다. / 이찬태극권도관
이찬태극권도관에서 배사식이 열렸다.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과 그들의 선배들이 서로 맞절을 하며 예를 표하고 있다. / 이찬태극권도관


스승에 제자됨 고하는 태극권의 ‘배사식’

우리 태극권에 ‘배사식’이 있다. 스승에게 절을 올리고 제자가 되었음을 고하는 예식으로, 지금 새롭게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가르침을 주고 있는 스승에게 제자됨을 고하고, 그 스승은 자신의 스승들께 이렇게 제자들이 문하에 들어왔음을 고하는 의식이다.

이 예식을 치르고 나면 전인(傳人)이라는 별칭을 받을 수 있다. 진짜 우리 문파의 제자가 되었음을 말하며, 이제 자신이 익힌 바를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도관에서는 2019년 초 ‘양식정자태극문배사식’을 치렀다. 나의 태사부(太師父)인 고(故) 정만청(鄭曼靑), 선사(先師)인 고(故) 국홍빈(鞠鴻賓) 선생과 역대 조사(祖師)들께 구배를 올리며 제자됨을 알렸고, 여러 사형제(師兄弟)들이 함께 참석해 상견례를 나누며 축하의 인사를 건냈다.

스승을 섬기는 마음은 고귀하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이끌어준 고마움은 생애 내내 존중되어야할 것이다. 어떤 상태에서 어느만큼 가르침을 받았더라도, 그 가르침이 자신을 키웠다면, 스승의 은혜는 ‘백골난망’이다.

바람처럼 물처럼… 유연함이 태극권의 원리

필자가 필자의 스승들에게 제자들을 받아들인다고 고하고 있다. / 이찬태극권도관
필자가 필자의 스승들에게 제자들을 받아들인다고 고하고 있다. / 이찬태극권도관


무술ㆍ운동 스승의 3가지 조건

내가 태극권 도관을 연지는 40년. 그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쳐왔다. 그 제자 중 몇몇은 지금 세상에서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태극권의 사범이나 관장, 스승이 되려면 오랜 시간동안 정성들여 수련하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해 갖춰야할 3가지 조건을 생각해 봤다.

먼저, 스스로 잘해야 한다. 잘한다는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제대로 못하면서 남을 잘 가르치기는 어렵다. 스포츠 감독과 무술 스승은 다르다. 코치는 설령 자신이 잘 못해도 기술과 통계, 훈수실력을 바탕으로 좋은 실적을 낼 수도 있을 지 몰라도 무술의 선생이 실력이 없다면 결코 잘 가르칠 수 없다. 같이 성장하고 앞길을 열어가는 무술ㆍ운동의 스승은 실력으로 존경을 받아야 진정한 사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둘째는 이론과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동작을 안다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동작의 의미와 활용방법을 알아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하나의 동작이 갖는 의미와 그 무술 전체가 갖는 철학을 알아야 수련생을 진정한 제자로 키워갈 수 있고, 그 무술의 전통을 살려갈 수 있다. 외형만 따라해서는 그 본질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무술 무예 무도(武術 武藝 武道)라고 할 때의 어감을 알겠는가. 태극권은 무도에 더 가깝다. 도를 알아야 도를 가르친다. 도를 완전히 깨닫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열고,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제자의 다름 속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 수련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길로 들어섰다면, 함께 소통하는 것에 마음을 열고, 외연을 확장해 갈 태세를 갖춰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전통무술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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