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극권대회 참가기–박정훈

2006년 11월 4일

“11월 초순, 지난 몇 개월동안 준비했던 “세계태극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타이페이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개인적인 일정 상 하루 늦게 서울에서 출발하고, 이찬 선생님을 비롯해서 다른 참가하시는 분들은 먼저 대만에 가셨다. 나는 이미 다른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지만, 대만은 처음 방문이고 운동 때문에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처음이라 많은 설레임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이페이는 여타 도시처럼 생기있고 바쁘게 돌아가는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도착한 날 저녁식사는 진정의 선생님의 초대로 퓨전 일본식당에서 하게 되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진 선생님을 뵈니 전혀 기대치 않았던 일이었다. 타이페이에서 첫 날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는 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대회 개최 장소로 이동하였다.대회 개최 장소는 서울 잠실체육관 정도(?)의 크기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있었고, 개최장소의 관람석과 코트는 대부분 사람들로 메워져 있었다.코트에서 단체별로 연습하는 광경은 내가 서울에서는 상상치 못하던 모습이었다. 50명내지 100명씩 모여, 내가 지난 1년간 수련하던 37식 태극권을 하는 모습을 보니 두려움도 앞서고 한편으로는 태극권에 대한 열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이었다.

 

태극권을 대만의 국기 종목으로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또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런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 당장 눈으로만 보아도 저 앞에 있는 참가자들은 나 보다는 훨씬 많이 수련하고 동작도 유연하고 짜임새 있어 보이는 것이 내 앞에 있는 현실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수련을 하고 대회 참가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오전 시간을 개회식을 위한 선수입장 및 개회 절차를 거치면서 보냈는데, 나는 키가 제일 크다는 이유로 선수입장 때 태극기를 들고 기수를 하게 되었다. 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좋은 기회인데, 기수까지 하다니! 국위 선양하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해 그 기분까지는 좋았는데— , 우리는 대회 참가인원이 7명 밖에  되지 않아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꼈다. 일본의 경우, 참가인원은 약 100여명 정도였고 태극권에 대한 이해가 많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개회식에는 대만 부총통(부통령. 여성)과 행정원장(국무총리)이 나와 축사를 해 주었는데, 그런 점을 보면 대만 정부의 태극권에 대한 열의가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태권도 세계대회에 국무총리가 나와 축사를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대회 주최측은 태극권 대회를 알리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 철저한 기획을 통한 짜임새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느낌을 받았다.

 

단체전은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배운 것 그대로 우리가 익힌 바 그대로—, 이전에는 긴장이 되었지만 연습을 하면서 한결 풀어진 상태로 돌아와 다행이었다. 우리가 연습을 하고 있으니 연습광경을 보고 있던 다른 대만 참가자들이 박수도 쳐주고 하여 기분은 업되고 있었는데— 참고로, 우리팀은 단체전 태극권가 13식 및 37식에 참가하고, 개인전으로는 권가 37식 및 병기부문에 태극검과 태극선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물론 나는 수련기간이 짧아 단체전만 참가하는 현실이었으나 절대 만족한 상황!

드디어 단체전 37식을 위해, 우리팀 차례가 되어 광활한 코트의 한 구석을 우리팀원 6명이 차지했다 (이해를 돕기위해, 다른 대만 단체팀의 인원은 적어도 40-50명 이상으로 구성). 이미 다른 코트에서는 각기 다른 단체전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국홍빈 선생님과 이찬 선생님을 비롯해 다른 대만 고위 선생님들의 태극권 시연들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단체전 심사위원들은 각 6방향에서 포진하고 있고, 공정한 심사를 위해 심사점수는 각 단체전 시연직후 바로 발표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수련했던 37식 시작 시간! 최선을 다해서, 실수하지 말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면서— 권가 시작후—  그런대로 우리팀은 수련했던 대로 잘 해가고 있었으나, 갑자기 나에게 뜻하지 않던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초긴장 상태. 옥녀천사 들어가기 앞서 단편을 해야하는 시점에 나는 각본에도 없는 사단편과 비슷한 다른 동작(?)이 나온 것이다. 나도 왜 그렇게 했는 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 심사위원들이나 관중들이 보았을 때 어땠을까 하는 생각만하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다. 긴장도 되지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고 머리속은 텅 빈 것 같았다. 요즈음 말로 “대략난감”이 정말 제대로 된   표현이었다.

옥녀천사를 하면서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권가를 다 마치니 다리에 힘은 쭉 빠지고, 특히 이찬 선생님 볼 면목도 없을 뿐 아니라 최환 회장님을 비롯한 우리팀원들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입장. 정말 난감한 처지였으니— 점수는 발표되고 다른 팀보다 만족할만한 점수를 얻지 못한 당연한 결과. 정말 태극권 대회에 괜히 왔나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겨를도 없이 우리팀은 바로 13식 대회코트로 이동하였다.

 

이동 사이에 같이 간 승목씨가 “그 때 어땠어요? 저는 짜맀했는데” (승목씨가 바로 내 오른 편에 있었기 때문에 나의 실수를 그대로 목격한 장본인 – 원래 승목씨는 내 실수를 보고 그런 것이 아니라 관중들 앞에서의 본인 자부심에대한 기분 표현), 나는 “뭐가 어떠긴 어때! 나도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가! 짜증” 하는 대화를 둘이 잠시 나누고 다시 13식에 도전하러 심사위원들 앞에 도열했다. 13식은 대회 단체전 참가 필수종목으로 우리팀이 약 2개월정도 수련했는데, 그나마 대회 가기 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팀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멋지게 해 내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 승목씨가 얘기할 부분은 승목씨의 몫으로 두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3식이 끝난 후 나도 승목씨에게 “13식 때 나도 짜맀했어!”라고 하면서 둘이서 웃음을 터뜨렸다.

단체전이 모두 끝난 후 이찬 선생님께서 우리팀원 모두 국홍빈 선생님께 인사를 시켜 주셨다. 말씀으로만 듣던 국 선생님. 모두 악수를 청하시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우리팀은 대만협회에서 주최하는 저녁식사에 초대(물론 이찬 선생님이 초대받으셔서 우리가 따라가게 됨) 받아, 우리팀은 긴장도 풀리면서 맛있는 대만 음식으로 포식하게 된다. 나는 개인전 참가할 실력이 되지 못해 단체전만 참가하고 그 다음 날 짧지만 긴(!) 여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적어도 이번 대만 대회에 참가했던 모든 분들은 2년 후 다시 열리는 “세계태극권  대회”에 모두 참가할 예정이다. 가능하면 다른 분들도 많이 참가하셔서, 국위선양 및 우리 도관에 대한 지위 상승 그리고 개인적인 태극권에 대한 새로운 관심 및 세계인들의 태극권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람이다. 이번 대회 참가로 인해 적어도 다시 느낀 점은, 내가 취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내 자신의 꾸준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며,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항상 마음의 여유로움을 가지고 지내는 것이 태극권이란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실력이 부족한 저를 대만 “세계태극권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귀중한 기회를 주시고 이끌어 주신 이찬 선생님과 최환 회장님, 강금강 전무님, 안찬호 조교님, 김태우 사무국장님과 오승목 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기회에 대만에 같이 가신 분들과 개인적으로도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제가 앞으로 태극권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면에서 많은 충고와 도움을 주셨습니다. 2년 후에 “세계태극권대회”에 다 같이 참가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박 정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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